본문 바로가기

[AQAL] 일상의 재해석

[ AQAL 도서 ] 『이향인 (Autovert)』을 읽고

무리 짓지 않아도 괜찮지만, 어떤 꼬리표도 필요 없는 우리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왜 나는 다 같이 모여있을 때 오히려 기가 빨리고, 무리에 섞이는 게 남들보다 피곤하게 느껴질까 하고요.

내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남몰래 고민하던 중, 라미 카민스키의『이향인(Autovert)』을 읽게 되었죠.

 

책에서는 저 같은 성향을 내향인도 외향인도 아닌 '이향인'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삶의 중심축이 철저히 '나'에게 맞춰져 있고,

무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을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설명에 처음에는 깊은 해방감을 느꼈어요.

억지로 공동체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초연결 시대에 나만의 고독을 지키는 게 결코 틀린 게 아니라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거든요.

 

하지만 책을 덮고 가만히 내면을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져보니, 문득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어요.

외향인, 내향인, 그리고 이향인이라는 이런 분류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한 것 아닐까 하고요.

 

우리가 매일 아침 주역을 넘겨 보거나 별자리 운세를 볼 때면 고개를 끄덕이며 '꽤 일리가 있네'라고 생각하곤 하잖아요.

심리학적 성향 테스트나 새로운 유형 분류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틀이 내 마음의 어느 한 구석, 현재 나의 특정한 상태를 우연히 잘 비춰주었을 뿐이지,

나라는 사람 전체를 완벽하게 정의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참으로 각양각색이고, 그 다채로움은 몇 가지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한 우주와도 같아요.

책이 제시한 '이향인'이라는 개념은 분명 내 안의 어떤 억압을 풀어주는 유용한 도구였지만,

결국 우리는 그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통합적이고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타인의 시선과 집단의 강요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는 이향인이야'라는 또 다른 라벨을 나 스스로에게 붙일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저 매 순간 변화하는 내 안의 다양한 결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온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