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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AL] 일상의 재해석

[ AQAL 도서 ] 'The Religion of Tomorrow' 를 읽으며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왜 종교를 떠날까.

 

한편으로는 여전히 명상과 마음챙김에는 관심이 많다.
어떤 형태로든 ‘의식’에 대한 탐색은 계속되고 있다.

사라진 것은 종교가 아니라 어쩌면 종교를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윌버는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을 제시한다.

의식의 상태와 발달 단계.

 

명상을 통해 깊은 고요를 경험할 수 있다.
비이원적인 체험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 경험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의 발달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깊은 체험을 했다고 말하지만 관계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반복되는 경우.

명상을 오래 했지만 조직 안에서는 여전히 방어적 태도가 드러나는 순간들.

체험은 깊어졌는데 그 체험을 담아내는 그릇은 그대로일 수 있다.


이 책은 의식이 발달한다는 관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전통적 세계관,
합리적 사고,
다원적 시선,

그리고 그것을 포괄하려는 통합적 시야.

 

각각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서 있는 단계를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종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직에서도 비슷하다.

성과 중심 사고가 전부라고 믿을 때 사람은 소모된다.

관계 중심 가치만을 강조할 때 실행력은 흔들린다.

각각은 필요하지만 하나만 붙잡으면 균형이 깨진다.


윌버는 “미래의 종교”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교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의 발달과 직접적 체험이 함께 가는 구조에 가깝다.

깊은 명상 경험이 있으면서도 인지적으로 성숙하고,
관계적으로 열려 있으며 삶 속에서 구현되는 상태.

 

이 조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향을 가리킨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종교보다 조직을 더 많이 떠올렸다.

기업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명상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마음챙김이 강조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그대로이고 평가 시스템은 그대로이며
리더십 방식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 체험과 구조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윌버가 말하는 네 가지 축이 떠오른다.

  • 깨어 있음
  • 발달
  • 정화
  • 구현

이 네 가지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어느 한쪽은 결국 한계를 드러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종교의 미래보다
조직의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조직도 발달하는 존재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단계에서 일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체험만을 쌓고 있는지,
아니면 구조까지 함께 변화시키고 있는지.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를 바꾸며 계속 이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의식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간다.

이 책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말하기보다
어떻게 성장해가야 하는지를 묻는 느낌을 준다.

 

조금 더 넓게 보고,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조금 더 통합된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시도.

 

그 흐름 위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그 질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