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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AL] 일상의 재해석

[ AQAL 23 ] 명절이 지나간 자리의 여백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조금의 침묵과 약간의 여백을 동반한다.”

 

명절이 끝나면 공기가 달라진다. 그건 단지 시간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며칠 동안 웃고 떠들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주변의 공기가 낯설게 식어간다.
먹고 남은 음식들이 아직 따뜻한데, 마음은 이상하게 비워져 간다.

 

무엇인가 많이 주고받았지만 정작 내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허가 남는다.

고향집을 나서며 뒤돌아본 풍경은 여전히 익숙하지만, 발걸음은 어딘가 디디다.

 

명절 동안 잠시 머물던 과거의 시간과 친척들과의 리듬이 아직 몸에 남아 있어서다.
가족의 웃음 속에서 내 마음은 다른 주파수로 움직였고 이제 다시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오려니 약간의 ‘시차’가 생긴다.
그 시차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려는 자연스러운 조정의 과정이다.

 

우리는 종종 이 불편한 공백을 ‘피로’라고 부른다.
하지만 조금만 멈춰 서면 알 수 있다. 이건 쉬었다는 사실보다 다시 연결되려는 마음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
명절은 관계의 재연결이면서 동시에 관계의 확장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피로, 기대와 실망, 감사와 무력감의 경계를 오간다.
그 모든 감정의 흔적이 한꺼번에 물러날 때 마음은 잠시 방향을 잃는다.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면 그 차가움 속에서 무언가 새로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출근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겠지만 그 무게 속에는 익숙한 삶이 다시 나를 부르는 울림이 숨어 있다.
나는 숨을 세며 걸어보자. ‘지금’이라는 단어가 다시 살아난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자리를 따라 마음을 놓으면 명절의 잔향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조용한 현재가 들어온다.

 

모든 회복은 결국 리듬의 회복이다.
가족의 리듬에서 사회의 리듬으로, 우리의 시간에서 나의 시간으로 천천히 옮겨가는 과정이 회복이다.
그 속도는 결코 빠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느릴수록 좋다.
마음은 속도를 싫어하고, 대신 깊이를 좋아한다.

 

나는 이 시기를 ‘다시 단단해 지는 시간’이라 부른다.
떠남과 돌아옴 사이에서 인간은 자기 안의 방향을 새로 발견한다.
명절은 잠시 우리를 다른 결의 삶으로 데려갔다가 그 여운을 통해 더 넓은 시야를 남긴다.
그 시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다시 중심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