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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AL] 일상의 재해석

[ AQAL 도서 ]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 적지 않았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은 분명 좋은 심리학 책이다.

 

게으름을 도덕의 문제로 보지 않고, 완벽주의를 성취욕이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방식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자 헤이든 핀치는 미루기와 자기비난의 악순환을 이렇게 정리한다.

 

기준은 높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크고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해 시작을 미루고 미룬 자신을 다시 혹독하게 비난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불안이며

해법은 더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해와 작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책을 덮고 나서도 이 질문이 계속 남았다.

 

게으르다 / 부지런하다
완벽하다 / 완벽하지 않다

 

이 판단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책 전체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상호 비교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 남들보다 느린가
  • 기대치에 못 미쳤는가
  • 사회적으로 합격선에 도달했는가

이 비교 환경 속에서 상처받은 개인을 어떻게 덜 아프게 살게 할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비교가 노멀이 된 상태를 전제로 탄생한 심리학 책이구나.


AQAL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위치는 분명하다 켄 윌버의 AQAL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매우 명확한 자리에 서 있다.

  • UL(내면) : 자기비난, 수치심,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신념을 섬세하게 다룬다.
  • UR(행동) : 의지를 강요하지 않고, 작게 시작하며 행동-정서의 고리를 풀어내려 한다.

이 두 영역에서 이 책은 성실하고, 임상적으로도 탄탄하다.

다만 AQAL이 함께 묻는 질문,


  • 이 비교는 어디서 왔는가
  • 왜 우리는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 이 기준은 개인의 것인가, 문화와 구조의 것인가

이 질문들은 이 책의 중심에는 놓여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책과 약간의 거리를 느끼게 된다.


명상을 하다 보면 게으르다 / 부지런하다는 구분은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걸 자주 체감하게 된다.

 

호흡을 관찰할 때, 몸의 감각을 알아차릴 때, 거기에는 비교도, 평가도, 기준선도 없다.

빠름과 느림은 있지만 옳고 그름은 없다.
충분함과 부족함도 없다.
그저 이 순간의 상태만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비교를 해체하기보다는 비교가 이미 전제가 된 상태에서
그 안에서 너무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고 말한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지점은 조금 다른 방향에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부분적으로공감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은 현대 사회의 비교 환경 속에서
상처받은 개인을 치유하는 데는 매우 유효한 책이다.

 

하지만 AQAL과 명상적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질문까지 던지지는 않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해야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이 서 있는 자리와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조금 다를 뿐이다.


이 책은 비교가 당연해진 세계에서 조금 덜 아프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 다음 질문에 더 오래 머문다.

 

비교 이전의 자리, 평가 이전의 자리, ‘잘함못함이 나뉘기 전의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상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질문은 심리학보다는 명상과 통합적 관점에 조금 더 가까운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책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책장 옆에 내려놓는다.